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본문시작

[티브로드 이재호기자]

[앵커멘트]
도봉구 창동역은
하루 10만 명 가까이가 이용하는
서울 동북권 교통의 요지인데요.
아울러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역이기도 합니다.
오늘 서울실록에서는
창동역의 100년 역사를 되돌아봅니다.
이재호 기자입니다.

[기사내용]
지하철 1·4호선이 지나가는
서울 동북권 교통의 요지.
도봉구 창동역의 위상은
100여 년 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 1911년
경원선 부분 개통과 함께 문을 연 창동역은
당시 경기 북부에서 경성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관문이었습니다.

최수정 / 역사해설가
(그 당시 북부 지방의 물자 자원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 경원선이 꼭 필요해서
착공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1910년도에 공사에 들어가서
11년도 10월 15일, 용산에서부터 청량리,
창동역까지 1구간을 완공하게 돼요.)

일제강점기 창동역은
독립운동의 요충지였습니다.

당시 경기도 양주군에 있으면서
경성과 가장 가까운 역이었기 때문에
독립운동가들은 창동역 인근에 거주하며
경성을 드나들었습니다.

북으로는 함경남도 원산항까지 이어져
만주나 연해주로 가기도 수월해
국내·외 독립운동이
창동역을 중심으로 기획됐습니다.

지금도 창동역 주변에서는
가인 김병로와 고하 송진우, 위당 정인보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최수정 / 역사해설가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면
여차하면 피신할 수 있는 곳이 창동역이었습니다.
창동역을 통해서 원산까지 가서
다시 블라디보스톡을 통해서 모스크바, 만주까지
피신할 수 있었던 교통의 요지가
바로 창동역이었기 때문에...)

창동역은 서울 근교
나들이 코스로도 사랑 받았습니다.

교통수단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주말에 도봉산을 찾거나
우이동의 벚꽃 등을 보기 위해
많은 인파가 몰렸습니다.

남북 분단 전에는
금강산 수학여행의 출발지이기도 했습니다.

최수정 / 역사해설가
(우이동 벚꽃길이 굉장히 아름다웠다고 해요.
지금의 강북구 우이동있잖아요.
그 쪽으로 넘어가는 시발점이기도 했고,
또한 서울 근교의 하이킹 코스였던
천축사나 원통사를 연결하는 시발점이
이 곳 창동역이고...)

지금의 창동역사는 지난 1985년
지하철 4호선이 개통하며 지어졌습니다.

20년 후에는 지역사회의 기대 속에
민자역사 건립이 시작됐지만
시행사의 부도로
공사는 아직도 중단돼 있는 상태입니다.

때문에 서울 동북권 교통의 요지임에도
역사는 다소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는 모양새입니다.

정체돼 있던 창동역은
서울의 문화 중심지로 도약을 준비 중입니다.

도봉구는 창동역 인근에
2만 석 규모의 대중음악 공연장을 포함한
문화산업단지 조성을
지난 2013년부터 추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KTX와 GTX가 창동역을 경유할 예정이라
교통의 중심지라는 위상도 더 커질 전망입니다.

이동진 / 도봉구청장
(주민들께서는
창동역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2024년 내지 25년에는
창동역에 KTX와 GTX가 연결되면서
전국적인 교통의 요지로 발돋움할 전망이고요.)

106년 간 우리와 함께 울고 웃어온 창동역.

오랜 역사를 토대로
지역 발전의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티브로드 뉴스 이재호입니다.

< 촬영 / 편집: 이정교 기자 >

제보 : snews@tbroad.com

구매하기
창닫기
영상선택
창닫기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