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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로드인천 박일국 기자]

[기사내용]

정유현 앵커)
설을 맞아서 가정 마다 여러가지 음식을 장만하셨을 텐데요.
이번에는 인천의 음식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뼈 해장국이나 감자탕은 대부분 한 번씩은 다 드셔보셨을 텐데요.
인천에서 시작됐다는 유래에 대해 들어보신 분은 별로 없으실 겁니다. 인천식 해장국의 역사엔 이런 이야기가 나올 법한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박일국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뚝배기에 담아 나오는 뼈해장국.
돼지 뼈를 장시간 끓이고 우거지를 넣어 얼큰하게 만드는 감자탕을
국밥 형태로 만든 것으로 이제 서민들의 대표적인 점심 메뉴로 자리잡았습니다.
원조가 어디냐를 두고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인천과 가까운 부천을 지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김성환
"부천에 조마루라는 동네가 있잖아요. 조마루 고개. 우리가 거기를 많이 먹으러 다녔거든 내가 고향이 부천이다 보니까"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는 감자탕의 유래에 대해 가장 신빙성 있는 이야기로 인천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개항 시기인 1899년 경인선 철도공사 때 인부들 사이에 인기있던 음식에서 나온 것이라는 이야깁니다.

지역 사학계와 문화계에선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로 인천의 근현대사를 주목합니다.
바로 19세기 개항 이후 인천항을 출입하기 시작한 외항선들 입니다.

- 김윤식 / 전 인천문화재단 대표
"외국배가 인천항에 일주일 닷새만에 오면 다음에 홍콩으로 가서 구라파로 간다 그러면 적당한 양의 스테이크 고기를 공급 받아야겠지 이런 수요가 있으니까 공급지가 생겨난 거지."

인천항에 외항선들의 출입이 늘고 육류 수요가 커지지면서 1916년에는 대형 도축장까지 등장합니다.
바로 지금의 동구청이 있는 자리로
현재 구청 앞 마당엔 동물들을 위로하는 비석도 세워져있습니다.
인천지역에 늘어난 육류 수요는 소뼈 등 다른 지역에선 구하기 힘들었던 재료를 이용한 요리법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 김윤식 / 전 인천문화재단 대표
"소 한 마리를 잡으면 서양 사람들이 뼈고 꼬리고 안 가져가잖아. 다 남잖아. 일본 사람들도 기록에 의하면 거의 서양 사람들 비슷하게 스테이크용 살만 일본 사람들도 먹었대요"

서양인과 일본인이 가져가지 않은 소뼈나 내장을 이용하는 식당들이
인천항 노동자들이나 쌀 경매장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면서 인천식 해장국의 기초를 마련하게 됩니다.
인천 도축장도 1963년까지 이어지면서 약 5백미터 정도 떨어진 송림동 닭알탕 거리를 형성하는데 역할을 했습니다.

- 양근주 / 닭알탕 식당 운영자
"동구청 있는데 도축장 이야기도 들으셨어요?"
"그 이야기도 들었어요. 거기서도 많이 왔다고 하더라고요. 쉬웠겠지 갖다가 바로 바로 하시니까."

전국적으로도 드물게 소뼈를 사용하는 인천식 해장국은 일제시대를 지나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변화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중구와 미추홀구 일대에 생긴 미군과 영국군 주둔지들이 다시 영향을 준 겁니다.

- 김명천 / 평약옥 3대
"제가 할머니에게 제가 3대니까. 이야기를 들은 바로는 미군 부대가 인천에 상륙해서 미군 부대가 이곳 저곳에 생기면서 거기서 나오는 부산물로 처음에 장국밥을 하다가 뼈 국물이 들어가고 해장국에 첨가돼서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구 남구 동인천 신포동 이쪽에 여러 곳에 유명한 해장국 집이 있었어요."

인천식 해장국은 소뼈를 오래 끓여 육수를 만들고 우거지와 된장을 넣는 것이 특징입니다.
조리 과정이 까다로워 가맹점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현재 60년 이상된 노포들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 김주숙 / 삼강옥 2대
"이민 갔던 손님, 정년 퇴직한 손님, 시한부 선고 받은 손님.
4대째 오는 손님도 있고 그런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껴요."

체인점의 등장으로 식당 영업도 산업이 되는 시대.
3~4개 노포들이 명맥을 이어오는 인천식 해장국에는 질곡이 심했던 인천의 근현대사가 녹아있습니다. 티브로드 뉴스 박일국 입니다.

영상취재/편집 : 정광진

(2019년 2월 5일 방송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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